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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기씨의 글 - 영어 공용화 논쟁..

쥔장부부 2012. 11. 16. 17:27

회색분자 ---- 이윤기

소설가 복거일의 저서 『국제어 시대의 민족어』를 둘러싼 영어 공용화 논쟁이 벌어진 적이 있다. 신문 지상에서 그 논쟁이 있기 전인 97년 겨울, 나는 한 계간 문예지 좌담회에 불려 나갔다. 그 자리에서 복거일은, 급속한 언어 교체 현상이 생기면서 세계의 언어가 무서운 속도로 영어화하고 있으니만큼 우리도 민족어를 고집할 것이 아니라 하루 빨리 영어로 사고할 수 있도록 영어 조기 교육을 확대, 강화해야 할 것이 아니냐는, 다소 과격하게 들릴 수도 있는 주장을 폈다. 사회자는 그 주장에 대한 나의 견해를 물었다. 나는 한 발짝 물러서는, 어정쩡한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다고 솔직하게 고백했다. 덧붙여, 나 자신에게 똑같은 주장을 할 용기는 없기는 하지만 실제로 아들딸에게 이중언어를 쓰고 이중으로 사고할 수 있도록 교육시켜왔다는 고백까지 했다. 내가 견해를 당당하게 피력할 수 없었던 것은 심정적으로는 그 견해에 동의하면서도 나 자신의 견해를 강화하는 데 필요한 논거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신문지상에서의 논쟁이 시작된 것은 98년 가을이다. 나는 그 자리에서도 한 발짝 물러서는, 어정쩡한 태도를 취했다.

「…복거일의 주장에 동조하거나 반박하기에 앞서, 영어와 관련해서 내 집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쓰고 싶다. 중학교 1학년 때 나와 함께 미국으로 간 아들은 8년째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다. 지금은 영화를 공부하는 대학 2년생이 되어 있는 아들은 지난 겨울, 영어를 자유자재로 쓸 수 있게 되었고, 영어라는 무기의 확보가 무한경쟁 시대의 유리한 고지 선점이 될 수 있으니만큼, 일찍이 영어 학습 환경을 만들어준 부모에게 무척 고마워한다고 말했다. 효율의 측면만 본다면 맞다.
하지만 내 딸은 다른 길을 갈 모양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도미한 딸의 영어는, 한국어 발음 습관의 잔재가 약간 묻어 있는 아들의 영어와는 달리 현지인 영어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그런데도 딸은 재작년, 입시지옥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귀국을 고집했다. 딸은 너무 늦기 전에 한국어를 완벽하게 구사할 수 있도록 공부하고 싶다고 했고, 지금도 하고 있다.
중학교 1학년 때 미국으로 간 아들 영어와 초등학교 5학년 때 간 딸의 영어 사이에 가로놓여 있는 간극은, 2년 세월로 간단하게 건너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들의 경우 어휘가 풍부하고 표현이 세련될 수는 있을지언정 현지인 발음은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라는 뜻에서, 나는 영어 조기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에 찬동한다. 그러나 영어 조기 교육이 민족어 교육에 지장이 될 정도로 강화되는 것에는 절대로 찬성하지 않는다. 영어가 판치는 세상이 올 것이라는 주장은 부정하지 않지만, 영어 교육을 민족어 교육에 앞세워야 한다는 주장이나 민족어가 사멸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에는 동의하지 않는 것이다.
민족어라는 것은, 언어 문화 현장에서 효율이 떨어진다고 해서 소멸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우리말을 완벽하게 익히기 위해 귀국하겠다는 딸의 생각에서 민족어의 뜨거운 생명을 본다. 모국어가 완벽한 실존적 습관이 되지 않는 한, 자신은 영원한 정신적 이방인을 면하지 못할 것이라는 딸의 생각을 나는 소중하게 길어올린다. 네덜란드 인들은 모국어를 버리지 않고도 대개 2,3개의 외국어를 모국어처럼 쓴다」

이 글이 나간 직후 나는, 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민족어 옹호론자로 호된 비판을 받았다. 나를 민족어 옹호론자로 비판하면서도 비판자는 나를 향하여, 「그는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복거일을 지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내가 민족어를 옹호하면서도 암암리에 복거일을 지지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음에 분명하다. 나는 복거일을 매우 용기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일련의 사태는 나를 당혹하게 한다. 고백하거니와, 내 귀에는 민족어를 옹호해야 한다는 주장도 옳게 들리고 복거일의 주장도 옳게 들린다. 꼭 어느 한쪽의 입장에 서야 하는가? 나는 어느 쪽이든 한쪽을 편들고 싶지는 않다. 고백하거니와, 내 귀에는 한글 전용론자의 주장도 옳게 들리고 한자 병용론자의 주장도 옳게 들린다. 꼭 어느 한쪽의 입장에 서야 하는가? 나는 어느 쪽이든 한쪽을 편들고 싶지 않다. 또 고백한다. 나에게는 의견이 있을 뿐 그것을 주장할 용기는 없다. 나는 회색분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