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경험 하나를 이야기할 게요.
제가 교도소에 참 오래 있었잖아요.
제가 교도소에 들어가기 전에는 한강에 제2한강교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제가 교도소에 들어가 있는 동안 지하철도 뚫리고, 63빌딩도 세워지고, 제3한강교도 놓였지요.
'제3한강교'라는 노래도 제가 수감생활을 하던 시절에 나왔어요.
그 시절에는 감방에 신입이 들어오면 감옥에 와 있는 사이 변한 서울 모습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게 중요한 일과였어요.
끊임없이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면서 서울의 풍경이 시시각각 바뀌던 시절이었으니까요.
그런데 같은 방에 있던 젊은 친구 하나는 새로 들어온 사람이 서울의 발전상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꼭 핀잔을 주곤 했어요.
서울에 새로 생긴 건물에 대해 설명하면서 "얼마나 높은지 아냐"라고 말하면 "임마 그게 네 거냐. 쳐다보면 고개만 아프지"라고 대꾸하는 식이지요.
그 젊은 친구는 서울역에서 13살 먹은 누이동생을 잃어버렸어요.
그런데 그 동생을 10년 뒤에 만났어요.
어디에서냐 하면 서울의 어느 사창가에서요.
처음에는 이 친구가 동생을 못 알아 봤대요. 그런데 동생이 먼저 오빠를 발견하고 달아나기 시작했어요.
그제서야 쫒아갔지만 결국 동생을 놓치고 말았답니다.
그래서 그 친구는 서울을 증오해요. 서울은 그에게 순진한 13살 소녀를 창녀로 만든 곳이었던 것이지요.
그 친구에게 만약 '서울의 얼굴'을 그려보라고 하면 과연 어떤 모습을 그릴까요.
순진한 옛 모습을 완전히 잃어버린 낯선 창녀의 모습이 아닐까요.
개인적 비극 때문에 너무 감정적으로 표현한 것 아니냐고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서울에 대한 그 친구의 생각이 매우 인문학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사회에 대해 빌딩의 높이나 교량의 숫자로 판단하는 이들과 달리 그 사회의 오갈 데 없는 한 소녀가 10년 뒤 어떻게 성장했느냐는 인간적인 기준으로 판단했다는 점에서 말이지요.
인문학은 바로 그런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인문학적 사고가 설 자리가 없는 곳에서는 진정한 소통이 불가능합니다.
그 자리에 들어서는 것은 화폐에 의해서만 평가될 수 있는 가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