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지켜라

6·25 전쟁의 경과

쥔장부부 2014. 9. 5. 09:34

625 전쟁의 주요 사건들의 시점이 내 기억속에 혼란스러워 정리해 보았다.

거의 1년만에 실질 전쟁은 종료되었으나 휴전 협상에 2년을 보내게된다. 

 

6·25 전쟁의 경과 [from 브리태니커]

 

1950. 6. 25. 전쟁 발발
1950. 9. 15. 인천상륙작전
1950. 9. 28. 서울 탈환
1950. 9. 30. 트루먼 대통령 북한으로의 진격 승인
1950. 10. 1. 맥아더 장군 한국군만을 38°선 이북으로 진격시키고 기타 UN군은 38˚선에서 대기
1950. 10. 7. UN 총회에서 UN군의 북한 진격을 허용하는 결의안 통과, 북진
1950. 10. 20. UN군 평양 탈환
1950. 10. 26. 일부 부대가 압록강변에 도달


1951. 1. 4. 서울 또다시 북한과 중공군에 함락
1951. 1월말 UN군 방어에서 공세로 전환, 서울 재탈환
1951. 2. UN 총회에서 공식적으로 중국을 침략자로 규정
1951. 3. 31. 중동부전선에서 38˚선을 횡단하여 북진
1951. 4. 11. 트루먼 대통령 맥아더 장군을 모든 직위에서 전격 해임 - 맥아더, 중국인민지원군이 개입한 이상 전장을 한반도에 국한할 필요가 없음을 강조하고 중국본토의 전략적인 표적에 대한 공격을 공공연히 주장
이때부터 UN군측과 공산군측은 전쟁의 제한에 관한 묵시적인 합의하에 상호 대공세를 피함으로써 전선의 이동이 없는 진지전의 형태로 전환
1951. 6. 23. UN 주재 소련 대표 Y.A. 말리크가 미국에서의 라디오 방송을 통해 교전 당사자들이 38˚선을 경계로 전쟁 이전의 위치로 복귀할 것을 제의
1951. 6. 30. 미국은 신임 UN군 사령관인 리지웨이 장군으로 하여금 공산군측에 대하여 휴전제의방송
1951. 7. 10. 개성에서 휴전회담이 개시, 판문점으로 이동
 휴전회담 쟁점으로 8개월간 회담 중단
 1. 모든 외국군은 한반도에서 철수하자는 공산군측의 주장과 이에 반대하는 UN군측의 주장
 2. 공산군측은 북위 38˚선으로의 복귀를 주장, UN군측은 현 전선의 유지를 주장
 3. 공산군측은 모든 포로는 무조건 송환시킨다는 원칙을 주장, UN군측은 희망자만 송환시킨다는 원칙을 제시
이때 UN군이 수용하고 있던 17만 1,000명의 포로 가운데 약 5만 명은 북한이나 중국 등 공산국가로 송환되는 것을 거부


1953. 1. 아이젠하워 대통령 정부 취임
1953. 3. 스탈린의 사망. 새로운 분위기가 조성됨에 따라 회담은 재개, 포로교환 문제도 합의에 도달
1953. 7. 27. 양측은 현재의 군사분계선을 경계로 각각 2km씩의 비무장지대를 설정하고, 휴전조약에 서명함으로써 전투행위 종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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