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 슬픔과 기쁨의 근원
저와 같이 있던 사람 중에 가난한 가족들을 먹여 살리던 젊은이가 있었어요. 이 친구는 하루 벌이가 쌀값과 연탄값이 못되면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들어가질 못했어요. 그 날 밤은 제일 값싼 합숙소에서 자고 새벽 일찍 서울대병원에 가서 피를 뽑아서 팔았어요. 그 얘기를 나한테 하면서 제게 실토했어요. 피를 뽑으러 들어가기 전에 수도꼭지를 틀어서 찬물을 가뜩 먹었대요. 피에다 물을 타서 팔았다는 거였어요. 그렇게 피에다 물을 타면서도 자기는 양심의 가책을 안 받았다는 점을 강조했어요. 다른 사람들도 술에다 물을 타서 팔기도 하지 않느냐는 것이었어요. 마시는 물이 피에 섞이는 것이 아니라는 설명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래도 조금은 물이 들어간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피가 들어간다 안간다가 문제가 아니라 제가 여러분에게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그가 강조하는 '가책을 안 받았다'는 말. 그 말의 진의입니다. 저는 그의 말을 가책을 느꼈다는 의미로 읽었습니다. 반어적인 표현이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가족들의 끼니를 위해서 병원의 새벽 수돗가에서 찬물을 들이키면서 그가 감당해야 했던 양심의 가책이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나는 그가 들이킨 겨울 새벽의 찬물이 설령 핏속에 바로 들어가더라도 상관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피값을 조금 더 받을 수 있다면, 그 돈이 굶고 있는 그의 가족들의 빈약한 끼니를 조금이라도 더 때울 수 있다면 상관없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는 저의 기억 속에 양심적인 사람의 어떤 전형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양심적인 사람'이라는 말만 나오면 그 친구가 생각이 나요.
저는 양심이라는 것은 타인에 대한 고려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관계'에 대한 고려라고 봐요. 디킨즈 소설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이를테면 쌀과 연탄을 살 수 없게 된 가난한 청년의 가장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 무엇인가에 관해서 쓰고 있습니다. 추위와 배고픔이 아니었다는 것이지요. 단골로 다니던 쌀가게의 아주머니와의 관계가 파괴되었다는 사실이라는 것이었어요. 이제는 다른 가게에서 쌀을 구입하나보다고 생각하는 그 아주머니와의 관계가 파탄된다는 사실이라는 것이지요. 그게 가장 괴롭고 고통스러웠다는 거예요. 그것이 아마 가난의 내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픔은 관계로부터 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기쁨도 관계로부터 온다고 생각합니다. 말도 없고 표정도 어두운 젊은 친구가 있었습니다. 같은 공장사람이나 같은 감방 사람들과도 일체의 관계를 거부하는 그런 침울한 젊은이였어요. 아무것도 없이 사는 친구였어요. 치약이 없어서 세탁비누로 양치질을 했어요. 딱하게 여겨서 누가 치약 한 개를 줘도 받지 않았어요. 안 받는 이유도 물론 한마디 없지요. 여러 사람들이 이런 저런 물건을 그에게 주었지만 딱 잘라서 받기를 거부해요. 그런데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것은 달라고 하면 거저 줄만한 물건들을 말없이 가져가기도 했어요. 런닝셔츠같은 것은 섞이지 않게 수번을 적어 놓았기 때문에 금방 가져간 게 들키게 되요. 그래서 들켜서 쥐어 박히기도 했어요. 그러고도 또 그런 일이 반복되었어요. 바깥에서 도둑질하는 것이라면 모르지만 이곳에서 도둑놈끼리 도둑질하다니 그런 경우 없는 짓이 어디 있느냐며 쥐어 박히지요. 그런데도 치약이나 런닝셔츠를 누군가가 주면 절대로 받지 않았어요. 우리는 포기했었어요. 저도 물론 서너 차례 무참하게 거절당한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를 잊고 있었어요. 그와 한 감방에 있은 지 한 이년쯤 지난 후의 일입니다. 어느 날 나한테 와서 '신선생님, 저 치약하나 사주세요.' 그래요. '너는 줘도 안 받는 녀석 아냐?'고 했더니 나한테는 한 개 사달라고 해도 될 것같다고 했어요. 그 때부터 관계가 시작된 셈입니다. 20년 징역살이동안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기도 했었어요. 그때부터 책을 빌려주기도 하고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어요. 물론 그 친구는 단기수였기 때문에 출소했지요. 그 후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안양에서 죽었다고 했어요. 안양에서 죽었다는 것은 안양에서 잡혔다는 뜻입니다. 안양교도소에서 징역살이하겠거니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난데없이 대전교도소에 나타났어요. 나하고 같이 있으려고 단식투쟁까지 해서 어렵게 어렵게 이송을 온 것이었어요. 나한테 줄 것이라고 하며 캐시밀론 A급 담요 한 장을 들고 왔어요. 이런 경우의 만남을 반갑다고 해야 할 지 알 수 없지만 반갑고 행복했었어요. 저는 아픔도 기쁨도 가장 큰 것은 바로 이러한 인간관계로부터 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을 갖습니다. 이 이야기는 기쁨과 아픔마저도 관계로부터 온다는 것, 그리고 자기의 이유마저도 자기의 개인적인 이유로부터 발견할 것이 아니라 '관계'로부터 발견해야 한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beerbob (2003-09-29 23:25:57)
갑자기 디킨즈의 소설 이야기를 보니까 오늘 읽다 만 단편소설 속의 구절이 생각난다. 윤흥길의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라는 소설인데... 아직 결론은 못 읽었고...
어쨌거나 그 소설 속에 찰스 디킨즈의 이야기가 나오거든...
찰스 램과 찰스 디킨즈는 불우한 유년 시절을 보낸 점과, 문학 작품을 통해서 빈민가의 사람들에 대한 동정과 연민을 쏟은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찰스 램은 정신 분열증으로 자기 친모를 살해한 누이를 돌보면서 평생을 독신으로 지내는 동안 글과 인간이 일치된 삶을 산 반면에, 어린 나이에 구두약 공장에서 노동하면서 독학으로 성장한 디킨즈는 훗날 이름을 떨치고 유족한 생활을 하게 되자 동전을 구걸하는 빈민가의 어린이들을 지팡이로 쫓아 버리곤 했다는 거다.
소설 속의 주인공(교사가 직업인 사내)은 램의 편에 서야한다는 걸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몸은 '디킨즈'를 따라 가고 있음에 절망하곤 한다.
신영복님의 말맛 넘치는 글은 늘 생각할 거리를 준다.
그 글이 그토록 마음에 와 닿는 것은 그 분도 글과 인생을 일치시키며 살아가는 분이기 때문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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