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지켜라

번역은 제2의 창작? 2005-03-07

쥔장부부 2012. 11. 26. 13:51

모든 상품에는 마케팅이 필요하다.
책도 그 예외가 아니다.

언젠가 이 마케팅에 속아 넘어가 25000원이라는 거금을 주고 산 책이 있다.
[인간에 대한 오해(The Mismeasure of Man)]-Stephen Jay Gould 가 그것이다.
뭐 내가 책에 대해 자세히 미리 살펴보지도 않고 산 것이 가장 큰 문제이겠지만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는 잘못된 척도에 대한 비판' 이라는 정말 '잘못된' 부제에서 비롯된 실수였다.
부제대로라면 인본주의 철학과 사회학을 비판하는 듯 보이지만 결코 그 주제가 아니다.
이 책의 실제 주제는 인종, 계급, 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영 딴 이야기다.

어찌되었든 이 잘못된 구매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고
'번역'의 문제를 제기하기 위함이다.
번역은 제 2의 문학 창조라고 말한다.
당연히도 다른 언어로 원문의 내용을 전하려면 단어의 사전적 의미만이 기술되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철학, 역사, 인문학 때론 심지어 문학에까지 파렴치한 번역서가 나돌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한글에는 있지도 않은 영문법을 그대로 활자화 하거나 꼬이고 꼬인 원문에서 헤어나오지 못해
스스로를 위안하며 짜 맞추어진 문장들은
그져 화가 나게 하거나 책을 '하얀 종이 위헤 까만 글자'로 만들어 버리고 만다.

돈 만원미만의 책도 이젠 별로 없다.
출판사는 도대체 무엇을 하는지 알수가 없고 '다빈치 코드'처럼 200만부를 팔아 치워야 오역이 어떠니 저쩌니
인정하고 만다.

그래서인지 요즘 읽은 책중에서
법정 스님의 '무소유'나 정민 교수님의 '不狂不及'과 같은 진짜 몇 안되는 우리나라 지은이의 책들이
가슴에 깊숙히 와 닿는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닐 것이다.(단 '不狂不及'은 제목에서는 글머리에 언급한 마케팅적
속임수가 약간 녹아 있다. 이 '미쳐야 미친다'라는 책 제목과 전체 책 내용은 사실 별 연관이 없다.
다만 우리 고서들과 선조들의 글을 읽지 않는 우리네 눈을 그래도 끌어 보려는 정민 선생의 '발악'적 의도가 엿보인다.)

같은 철학사조를 이야기 하더라도 동양 철학 보다는 니체나 소크라테스를 언급해야
그래도 좀 이해가 가려는 나의 삐뚤어진 사고가 밉다.
순 한글이 오래전 포기된 지금,
그래도 살갑고 정겨운 우리 말로 된 글을 꼭 많이 읽으련다.

홍성이가 말했듯,
러시아 외국인 박노자 교수보다 우리글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우리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