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영화 세상

[영화] Patch Adams, 1998 2011-01-03

쥔장부부 2012. 12. 10. 13:12

 

 

 

 

영화를 보게 되는 계기는 여러가지다.
광고나 지인의 권유로 극장에서 보게 되는 경우도 있고
OCN과 그 아류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도 '언제 한번은 봐야하는데' 했던 영화의 첫부분을 만났을 때,
G market에서 물건을 사면 박스에 동봉되어 날아오는 웹하드 쿠폰을 정성스레 모아두었다가
ID만들어 이리저리 찾아보다가 그래 이거야 해서 다운 받아 보는 경우,
당나귀에 힘을 빌리기도 하고 극장 가기는 귀찮고 해서 숙제같은 느낌으로 봐주는 영화들도 있다.

Patch Adams... 내가 이 영화를 Adams Family와 헷갈려서 보지 않았다는 건 창피하지만 기록해 둔다.
근래 보았던 무수한 영화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다.
아 10년도 더 지난 영화를 이제야 보게되어 아쉽기도 했지만
소 말대로 지금 보아서 내 감흥이 이렇게 큰 것 같기도 하다.

실제 이야기라는 이 영화는 한 사내가 자살 충동을 느껴 정신 병동에 자진해서 입원하였다가
정신 병원에서 자신의 '치료' 능력을 인지하고 제대로된 의학도가 되려고 노력한다는 이야기다.
의학도가 되기 위한 과정이 영화의 주된 이야기인데 예나 지금이나 만연한 '의사'의 권위 의식을 버리고
환자를 '물리적 대상'이 아닌 '인간'으로 보기위한 힘겨운 투쟁이 그려진다.

회사를 옮겨오면서 난 이제 이 회사가 마지막일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뭐 언제까지 월급을 받고 이 회사의 명함을 돌리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이 방면에 일하며 지내온 10여년의 지식이나 태도, 영감 등을 풀어 놓을 곳이라는 생각을 했다.

직급이 올라갈 수록 고객과의 대면이 잦아지고
내가 만든 제품이 영업 사원을 통해 전달되는 거리감이 이젠 훨씬 줄어들게 되었다.
내가 설득하여 제품을 팔아야 하는 것이다.

아담스로 열연한 로빈 윌리암스를 보면서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예전엔 월급을 받는 회사는 '돈'을 위해서 다니는 것이고 삶을 위해 무엇인가 다른 것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비 정상적인 회사 행태가 그런 태도를 굳건하게 만들어 주기도 한 것 같다.)
먹고 사는 문제가 나의 결정과 행동과 결부된 요즘을 상황을 생각하면
가능하지 않은 이야기이다. 물론 이에 대한 물음은 아직 답을 내리지 못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생활하는 '업무'에 대한 '다른'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어찌되었든 사람을 만나 서비스를 파는 의사나 사람을 만나 물건을 파는 나나 다를 것은 없다.
중요한 것은 사기를 치느냐 사기를 치지 않느냐는 것이다.
물론 나는 사기를 치지 않는데 결국은 사기를 치는 결과가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그건 내가 견지할 수 있는 시야의 범위로 국한짓도록 하자.

때론 말도 되지 않는 논리로 로비스트와 꾸며지는 사업도 있지만
사실 대부분의 영업은 가장 합리적인 시스템 구성과 그 구성을 가능하게하는 가장 경제적인 가격으로 결정된다.

그런데 대부분의 영업은 '담당자'와 시스템의 '운영자'를 포함하여 진행되지만

가끔은 물리적 대상으로 바라보며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담당자와 친하다'는 의미가 농담이나 나누고 형님이라 부를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경우도 다반사다.

중요한 것은 '진정성'의 전달이다.
영업 대상에 대한 담당자의 고민과 현실적 영향 변수를
'난 이번에 이거 팔아야겠어'로 달성하는 영업도 있겠지만
'난 내가 자신하는 이 시스템을 꼭 여기에 넣어서 제대로 쓰게 하고 싶어'로 목표를 달성하는 영업도 있다.
작금의 결과는 같을지 몰라도 조금 지난 결과는 다르다는 것이 내 지난 경험이다.

말로는 나 양아치야, 나 모사꾼이야, 이새끼 내 손아귀에 있어하는 '잘하는' 영업 사원들의 면면을 보면
사실 '진정성'에 기반한 영업을 해오고 있다.

나에겐 또 다른 시험의 1년이 밝았다.
카이사르가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만 본다'고 했다는데
나도 Patch Adams를 '보고 싶은 대로만 본'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본업이 의사가 아니더라도
결국은 옆사람에게 아쉬운 소리 해야하는 삶을 살고 있는 모든 분들은
한번쯤 보았으면 하는 영화다.

더 나아간 '공동체의 꿈'은 내 고민이 아닌 것 같고.